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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샵에서 프랑스·이탈리아·미국 코너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구석에 조지아나 오스트리아 라벨이 한두 병 꽂혀 있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손이 잘 안 갑니다. 이름부터 낯설고, 어떤 맛일지 감이 안 오니까요. 그런데 인스타그램 @wine.with.u 기록을 다시 훑어보다가, 이렇게 손이 잘 안 가는 산지 병들을 실제로 따서 마신 기록이 꽤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조지아,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스페인 리오하 알라베사, 그리고 산지를 특정하지 않은 내추럴와인 한 병까지. 오늘은 이 네 병을 통해 "잘 모르는 산지"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정리해봤습니다.

    왜 항상 같은 산지만 고르게 될까

    이유는 단순합니다. 실패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보르도나 나파처럼 이름이 익숙한 산지는 대충 고나 실패 확률이 낮다는 심리적 안전판이 있습니다. 반면 조지아나 슈타이어마르크는 정보도 적고, 실패해도 "역시 낯선 산지는 어렵구나" 하고 다시 안 사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기록을 들여다보면, 낯선 산지라고 다 어렵거나 실망스러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래 네 병 중에는 만족스러운 병도, 아쉬운 병도 섞여 있습니다. 그 편차 자체가 오히려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조지아 — 와인의 발상지라는데, 왜 이렇게 낯설까

    조지아는 흔히 "와인의 발상지"로 불립니다. 코카서스 지역에서 8000년 전부터 포도를 발효시킨 흔적이 발굴되면서, 유네스코가 조지아의 전통 항아리 양조법인 끄베브리(Qvevri) 방식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했습니다. 끄베브리는 땅속에 묻은 커다란 점토 항아리로, 포도 껍질과 씨까지 함께 넣고 발효시켜 화이트 와인인데도 오렌지빛이 도는 독특한 스타일이 나옵니다. 다만 실제로 국내 와인샵에서 조지아 와인을 마주치는 일은 아직 드뭅니다.

    기록에 남은 병은 Château Mukhrani의 Chinebuli 2021, 카르틀리(Kartli) 지역 화이트였습니다. 끄베브리 방식은 아니고 좀 더 스탠다드한 양조로 보이는 병인데, 평가는 담백했습니다.

    조지아 화이트 와인. 맛은 쏘쏘.(짧은 여운이 다소 아쉽.)

    여운이 짧다는 건 산미나 향은 나쁘지 않았지만 마시고 난 뒤 인상이 오래 안 남았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낯선 산지 첫 병에서 나올 수 있는 아주 흔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조지아 와인을 처음 시도한다면, 끄베브리 방식으로 만든 오렌지 와인 쪽이 오히려 산지 특징이 뚜렷해서 인상이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 내추럴와인 씬의 심장부

    오스트리아 남부 슈타이어마르크(Styria) 지역은 내추럴와인을 좀 파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산지입니다. 기록에 남은 곳은 Sepp Muster(셉 무스터) 와이너리로, 레스토랑 주은에서 만난 병이었습니다.

    📍 레스토랑 주은 — Sepp Muster 셉 무스터 와인너리 X Vin V 뱅베

    셉 무스터는 2000년에 아버지로부터 포도원을 물려받은 뒤, 인도와 호주에서 지낸 경험을 계기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도입한 생산자입니다. 오스트리아 남부 약 10ha 규모의 밭은 고도 450m 경사면에 자리해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함께 받고, 이 지역 특유의 백악질 이회토 "오폭(Opok)" 토양이 와인에 복합적인 미네랄감을 더해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라벨 디자인도 그의 친구인 아티스트 Beppo Pliem의 작품이라, 땅과 하늘과 포도의 상호작용을 그려낸 것이 특징입니다. 함께 있던 다른 팔로워는 이런 반응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주은 소믈리에께서 오스트리아 와인 좋아하시는 듯😍😍

    슈타이어마르크는 내추럴와인 입문자에게 오히려 추천할 만한 산지입니다. 자연 발효 특유의 거친 느낌보다는, 서늘한 기후에서 오는 산뜻한 산미가 먼저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리오하, 그런데 "알라베사"는 다릅니다

    리오하는 스페인 레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산지지만, 리오하 안에서도 알라베사(Alavesa)는 결이 다릅니다. 바스크 지방에 가까운 북쪽 고지대라 서늘하고, 석회질 토양 비중이 높아 리오하 알타나 바하보다 산미가 또렷하고 우아한 스타일이 나오는 편입니다. 기록에 남은 병은 Telmo Rodriguez의 YJAR 2019였습니다.

    향도 넘 좋고, 기름기 쏙 빠진 오리&돼지 바베큐와 페어링이 아주 좋았던! 👏👏

    바비큐처럼 기름진 음식과 매칭했을 때 산미가 입안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리오하"라는 이름만 보고 진하고 무거운 레드를 기대했다가, 알라베사 병을 만나면 의외로 가볍고 산뜻해서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지보다 먼저, "내추럴와인"이라는 카테고리

    여기까지는 산지 기준이었다면, 마지막은 스타일 기준입니다. 내추럴와인은 특정 산지가 아니라 양조 방식을 가리키는 말로, 인위적인 효모 첨가나 과도한 정제·여과 없이, 최소한의 개입으로 만든 와인을 통칭합니다. 그래서 조지아에도, 오스트리아에도, 심지어 보르도에도 내추럴와인 생산자가 존재합니다. 기록에는 산지를 특정하지 않은 채 이렇게 남아 있었습니다.

    반쪼기와 예전에 홍대의 한 식당에서 마셨던 추억이 있는 ORO VERDE 내추럴와인. 시트러스하고 산뜻한 맛이 맛있다.

    시트러스하고 산뜻하다는 표현은 내추럴와인에서 자주 나오는 인상입니다. 여과를 덜 거친 만큼 과일 본연의 신선한 느낌이 살아있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개체차가 커서 같은 라벨이라도 병마다 맛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네 병 비교

    와인 산지 스타일 체감 인상
    Château Mukhrani Chinebuli 2021 조지아 카르틀리 화이트 쏘쏘, 여운 짧음
    Sepp Muster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내추럴·바이오다이나믹 서늘한 산미, 미네랄감
    Telmo Rodriguez YJAR 2019 스페인 리오하 알라베사 레드 향 좋음, BBQ와 궁합 좋음
    ORO VERDE 미상 (내추럴와인) 내추럴 시트러스, 산뜻함

    낯선 산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정답은 없지만 순서를 정한다면 이렇습니다. 먼저 익숙한 품종을 낯선 산지에서 찾아보는 것이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예를 들어 리오하 알라베사처럼 템프라니요라는 익숙한 품종을 다른 스타일로 만나는 방식입니다. 그다음이 스타일 기준, 즉 내추럴와인처럼 산지를 가리지 않고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이 조지아처럼 품종도 스타일도 완전히 낯선 산지인데, 이건 실패를 각오하고 도전하는 영역에 가깝습니다. 수입사가 한정적이라 와인샵보다는 내추럴와인을 전문으로 다루는 편집숍이나 레스토랑 와인리스트에서 먼저 접해보는 편이 접근하기 쉽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내추럴와인은 다 시고 이상한 맛인가요?

    아닙니다. 양조 방식의 차이일 뿐, 잘 만든 내추럴와인은 오히려 과일향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병차, 즉 같은 라벨이라도 병마다 편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일반 와인보다 큰 편입니다.

    Q. 조지아 와인은 다 오렌지색인가요?

    아닙니다. 끄베브리 방식으로 만든 화이트만 오렌지빛이 돌고, 스테인리스 탱크로 만든 조지아 와인은 일반 화이트와 색이 비슷합니다. 이번에 마신 Chinebuli도 오렌지 와인은 아니었습니다.

    Q. 리오하 알라베사와 리오하 알타는 라벨만 봐서는 구분이 안 되는데요?

    뒷라벨이나 수입사 설명에 "Alavesa"라는 표기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없다면 판매처에 직접 물어보는 게 정확합니다.

    Q. 이런 산지 와인, 실패 확률이 높지 않나요?

    익숙한 산지보다는 편차가 큰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 병에 큰 기대를 걸기보다, 여러 산지를 조금씩 시도해보면서 취향을 넓혀가는 쪽을 추천합니다.

    오늘 소개한 병들을 포함한 시음 기록은 인스타그램 @wine.with.u에서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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